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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성

직인이 찍힌 비단 조각

냠  2020. 2. 15. 18:43



TRPG 시나리오 송혼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로그입니다. 

플레이로그



(단도로 잘라낸 듯 가장자리가 삐뚤빼뚤한 흰 비단 위로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다.)

   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온지요. 불초한 여식이 먼 곳에서나마 폐하께 안부를 여쭈옵니다. 폐하의 치세로 남능은 강건하고 능안에는 만백성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존안을 뵙지 못하여도 초목이 싱싱하고 하늘이 드높으면 늘 폐하의 곁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. 모쪼록 이리 남루한 물건을 감히 폐하께 전하고자 하는 무례를 하해와 같은 은혜로 너그러이 여기소서. 이 서신을 전할 금군위장 린 제러드는 소녀의 가장 진실된 충복으로, 청컨대 그의 충심을 헤아리시어 후에 걸맞은 상을 내려주소서. 그에게 죄가 있다면 주인의 명을 따른 일 뿐이나이다.

   폐하, 짧지 않은 생을 살며 소녀에게 가장 복된 일을 헤아리자면 폐하의 여식으로 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. 높고도 깊은 황은을 다 갚을 길이 없어 언제나 모자람 없는 손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빼어난 적 없는 소녀를 어여삐 여겨주시니, 감히 그 가없는 사랑에 기대어 청하고자 하는 일을 노여워 마시고 들어주소서. 소녀는 오래 전부터 이 생이 다할 날을 알아왔나이다.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어찌 인력이 닿겠나이까. 천지신명께서 정해 두신 끝을 아는 것이 다만 이 어리석은 여식이 얻은 덕인 줄로만 알았습니다. 하여 이 마지막에 소녀는 어떠한 원망도 미련도 내려놓은 지 오래입니다. 자식 된 도리로 낳아 주신 어버이보다 먼저 눈을 감으리라는 말을 어찌 입에 올리겠습니까. 이 날 이 때까지 더없는 죄를 짓는 두려움에 서간으로 말씀 올리는 불효를 용서하소서. 다만 폐하께 이 불효 자식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면, 부디 소녀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눈물과 곡소리 외의 어떤 것도 더해지지 않기만을 바라겠나이다. 세상사 모든 일은 하늘이 점지하시니 뉘를 더 탓하겠나이까. 그저 소녀는 먼저 떠난 어미 곁으로 가 내세에서도 폐하와 남능의 홍복과 안녕만을 빌려 합니다.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소녀의 가슴을 가득 메우는 탄식은 오직 폐하의 혜안을 슬픔이 아닌 것들이 흐리려 들까 하는 염려에서 나올 뿐입니다. 그러니 폐하, 만백성과 온 남능의 어버이이심을 익히 아오나, 세상에 기댈 어버이라고는 폐하 한 분이 유일한 소녀의 명운을 가엾이 여기신다면 부디 헤아리소서.


   모 월 모 일 달 밝은 밤 폐하의 여식 사타가 엎드려 절하옵고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. 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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